기문향/리뉴얼

어둠이 내려앉는다. 깊고, 깊게. 안식과 공포의 시간이 도래하고, 모든 이들이 안식에 취해, 공포를 피해, 잠에 빠져들 시간에 잠이 들지 못하는 건 누구일까. 차라랑… 깊은 밤. 등화원의 등롱들마저 잠이 드는 깊은 시간에 청의 수문장이 손님의 방문을 알리며 나를 재촉한다. 싸늘한 바람, 차가운 눈발. 아직 눈이 내리는 정월. 그것도 별빛조차 들지 않는 깊은...

눈이 내린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얼리겠다는 듯. 표독한 추위가 밤을 감싸 안으며, 잠들지 못한 바람의 정령들이 흩어지는 눈송이를 끌어안는다. 빛조차 들지 않는 그믐의 밤, 칼날 같은 바람과 수없이 떨어지는 밤의 하얀 눈물들은 쉼 없이 허공을 휘돌아 어스름한 지면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가만히 지면 위를 하얗게 덮으며 흩어지는 빛의 잔영들을 모아 아스라하게...

잡지 못한 시화詩畵가 세상을 떠돌고, 취기에 잘난 듯 손을 놀려보느니. 논하지 못하고 화폭에 담지 못하는, 세상을 비추는 작은 호수 위에 여보란 듯 드리워진 노란 꽃잎. 하느적 날아가는 세월의 꿈속에서 이래저래 많은 소리들을 접으며, 탓하는 마음을 제비처럼 날려 보내며, 그저 무엇도 논하지 않고 그리지 않은 채, 노란 배 뜨인 작은 호수 위를 취선醉仙과 함...

낭창이며 휘어지는 잎 위로 떨어진 빗방울은, 빛바래고 시들어가는 꽃잎들이 서러워 흘리는 눈물. 은사銀絲 거미줄 하나에 홀로 고개 숙이는 꽃대와 힘없이 어깨를 움츠리는 꽃술과 열매조차 맺지 못하고 떨어지는 꽃잎, 하릴없이 굴러떨어지는 눈물방울 잡아 꿰어 목에 걸고 싶어 하는 어린 소녀의… 빗속을 헤는 꿈. 1. 쏴아아아-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는 끊어질 기미...

기묘한 소문. 소문이 머무는 곳.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 사이로 지나가는 환영幻影. 향유 냄새 배어있는 공간, 부유하는 잔영들. 기묘한 소리, 흩어지는 바람이 머무는 곳. 기문향奇聞鄕. 1. 땅거미가 긴 그림자를 그리며 세상 위로 드리워졌다. 바람을 타고 나는 창공의 정령은 황혼이 드는 시간이 되면 날개를 접고 낮과 밤의 교차점을 찾기라도 하듯이 지상으로 내...